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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과 열하일기 – 청 문물에 대한 개방적 시각과 실학의 탄생 → 조선 후기 ‘북학사상’의 대표 열하로 향한 박지원의 여정은 단순한 국경을 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대주의에 물든 조선 사회에서 금기시되던 청나라 문물을 직접 보고 느끼며, 새로운 지식의 물꼬를 트기 위한 실천적 행보였다. 『열하일기』는 그 여정의 기록이자, 실학의 지평을 연 지성의 산물이다. 조선 후기의 고루한 질서 속에서 박지원은 외부 문물에 대한 편견을 넘고자 했고, 그 기록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갈등의 서막조선 후기, 양반 사대부 사회는 유교적 명분론과 명나라에 대한 숭배로 인해 청나라를 오랑캐로 치부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명은 멸망했고, 청은 안정된 국가체계를 기반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조선은 여전히 북벌론을 내세우며 청과의 외교적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박지.. 2025. 9. 5.
정약종과 천주교 박해 – 순교와 신앙의 자유를 위한 투쟁 정약종과 천주교 박해, 순교와 신앙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단순한 종교 사건이 아닌, 조선 후기 사상과 국가 통치 이념의 근본 충돌이었다. 유교 중심의 질서 속에서 서학(천주교)은 도전이었고, 정약종은 그 신념을 끝까지 지킨 실천적 지식인이자 순교자였다.갈등의 서막조선 후기, 실학과 서학의 유입은 기존의 유교 중심 사회에 균열을 일으켰다. 특히 천주교는 ‘하늘에 대한 직접적 신앙’을 강조하며 제사 거부, 평등사상을 주장했다. 이는 종묘사직 중심의 조선 왕조 이념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정약종은 남인 가문 출신으로, 형 정약용과 함께 실학을 배우고 사회개혁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형과 달리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조선 최초의 교리서 《주교요지》를 저술하며 전도에 힘썼다. 이는 곧 정치적 이단으로 간주되었.. 2025. 9. 4.
성삼문과 단종복위운동 – 사육신의 충절과 단종의 비극 성삼문과 단종복위운동은 조선 정치사의 비극이자 충절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사육신의 결연한 선택은 정의와 절의의 가치를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정치사의 최대 비극, 단종의 폐위조선 전기, 단종은 조상의 후광을 입고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삼촌 수양대군(후의 세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게 된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며, 단종을 상왕으로 격하시킨 뒤 결국 사사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권력 탈취를 넘어 조선 정치 윤리와 충절 개념을 뿌리째 흔드는 사건이었다. 성삼문, 절의의 상징으로 떠오르다 이러한 불의한 상황을 참을 수 없었던 성삼문과 그의 동지들은 단종의 복위를 꾀한다. 이들은 세조에 의해 조선의 정통성이 무너졌다고 판단했고, 왕좌의 정당한 계승자인 단종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사명.. 2025. 9. 3.
신숙주와 한명회 – 세조 정권의 실세와 충신 논란 → ‘변절자’인가 ‘현명한 충신’인가에 대한 재평가 신숙주와 한명회는 조선 세조 정권을 떠올릴 때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다. 조선 초기의 이상주의를 넘어 현실 권력의 중심에 선 그들의 선택은 오늘날까지 ‘변절자냐 충신이냐’라는 평가 속에 살아 숨 쉰다.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선택한 길조선 전기의 정치사는 이상과 현실의 끊임없는 충돌이었다. 단종의 즉위 이후, 어린 군주를 둘러싼 권력 공백은 커다란 정치적 갈등을 낳았고, 그 중심에는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있었다. 세조는 계유정난을 통해 실권을 장악한 뒤 단종을 강제로 폐위시켰다. 이 과정에서 왕권 강화의 조력자로 두각을 나타낸 이들이 바로 신숙주와 한명회였다. 신숙주는 본래 세종의 총애를 받은 유능한 학자이자 외교관으로, 훈민정음 창제에도 깊이 관여했다. 하지만 단종 복위 운동을 벌인 사육신과는 달리, .. 2025. 9. 2.
김정희(추사)와 세한도 – 유배 속 피어난 예술과 학문유배라는 시련, 정신의 전환점 조선 후기 실학과 예술을 논할 때, 김정희(1786~1856)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조선의 마지막 르네상스인으로 불릴 만큼 예술, 서예, 고증, 실학, 문학 등 여러 방면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 모든 성과가 화려한 궁정이나 편안한 서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 그의 창조성을 극대화했다. 1840년, 그는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되고, 이곳에서 대표작 「세한도(歲寒圖)」를 완성한다.「세한도」가 담은 상징과 철학「세한도」는 간결하고 정적인 화풍 속에 내면의 치열함을 담고 있는 수묵화이다. 한겨울 소나무와 잣나무 몇 그루만을 간결하게 그린 이 작품은, 유배지의 황량한 현실과 그 속에서 지켜낸 절개를 상징한다. 이 그림은 제자인 이상적에게 바친 것으로, 자신을 .. 2025. 9. 1.
김만덕과 제주 기근 구휼 – 여성 상인의 나눔과 경제 정의 김만덕과 제주 기근 구휼 여성 상인의 나눔과 경제 정의는 조선시대라는 유교 중심 사회에서 보기 드문 여성 리더십의 사례로 평가받는다. 상업 활동으로 재산을 축적한 후, 이를 전부 내어 제주 백성들의 생명을 살려낸 그녀의 이야기는 지금도 울림이 크다. 정치적 갈등의 서막, 조선 후기사회의 빈곤 현실조선 후기,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 지역은 유배지이자 식량 자급이 어려운 고립된 섬이었다. 유배된 죄인들,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 그리고 제주 토착 백성들이 함께 살아가던 이곳은 천재지변 한 번이면 쉽게 기근으로 이어지는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었다. 1795년, 극심한 흉년이 제주를 강타했고, 수많은 백성들이 굶주림에 쓰러졌다. 당시 중앙정부의 대응은 더뎠고, 지역의 관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때 등장한 인.. 2025. 8. 31.